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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희 남편 딸

1980년대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 유머 1번지' 의 코너 ' 쓰리랑부부' 에서 '마무리','방 빼' 등을 외치며 부부 다툼의 조정자로 활약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신영희 명창이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인생 이야기를 전한다고 합니다. 

 

신영희는 국악인이었던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아 11살 부터 소리를 시작했습니다. 신영희 아버지 신치선 명창은 국악의 길로 들어서는 딸에 대해 못마땅했다고 하는데요. 그 당시에는 소리하는 여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타고난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신영희는 아버지를 여읜 뒤 당대의 소리꾼을 찾아다니며 내공을 쌓았으며 만정 김소희 선생을 마지막 스승으로 만나면서 신영희는 판소리계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이후  '쓰리랑 부부'를 통해 주목을 받았는데요. 신영희는 국악을 알리기 위해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국악계에서는 반대가 심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스승조차도 외면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 당시 욕을 많이 먹었지만 지금까지 후회한 적 없이 잘했다고 생각한다. 제자들도 선생님이 선구자이고, 선생님 덕분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해준다며 덤덤히 말했습니다. 

 

한편 신영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남편 딸 등도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신영희는 22살의  나이에 첫 번째 결혼해 딸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신영희가 국악 활동을 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했던 전 남편과 불화가 생기면서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영희는 딸에 대해 ' 몸이 약해 국악은 안 한다. 실내화, 교복 한 번 세탁 못해줘 아쉽다'라고 말하며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신영희는 1994년 재혼했지만 2005년 이혼했다고 합니다. 신영희는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해 재혼 후 이혼한 이유를 고백했는데요. 

 

두 번째 남편에 대해 ' 저하고 이혼하고 몇 년 있다가 돌아가셨다. 제가 음식도 잘하고 꼭 집에서 해먹었다. 남편 공경을 잘했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 내 소유의 별장을 나 모르게 자기 이름으로 해놨더라. 그래서 내 이름으로 안 해놓으면 지명수배하겠다고 하니 돌려놓더라. 이후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났다' 고 전남편에 대해 언급하며 이혼 이유에 대해 밝힌 바 있습니다.